오행의 상호작용 관계
모든 우주 만물에는 음과 양이 있으며 그 음양의 조화는 변화무쌍하다. 음양을 인간으로 보면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낮은 양이며 밤은 음이고 웃음은 양이며 눈물은 음이다. 계절로 볼 때 여름은 양이고 겨울은 음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에는 음양이 존재하며 음양에서 다시 오행의 속성으로 분류된다. 음은 탁하고 무겁고 가라앉는 물질이기에 해당하고 양은 동하고 청하며 가볍고 치솟아 오르는 것으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삼라만상에서의 음양오행의 심오한 변화를 응용하고 이용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과 같은 첨단사회에 이르렀다. 그러나 명리학 계통의대학 학위 등 과학적 실증이 미진하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이 밤에 자고 낮에 일하며 결혼을 통하여 다시 아들딸을 탄생시키는 음양오행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간의 몸도 좌우상하로 음과 양으로 창조되었기에 중풍이 오면 한쪽만 마비되는 것이다. 슬픔이 지나치면 눈물이 마르며 너무 기쁘면 눈물이 나게 된다. 그러므로 음은 양으로 다스리고 양은 음으로 다스린다. 이러한 이치는 음양이 서로 대립 관계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상호 보완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음양은 실질적으로 기와 체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양은 기와 정신이고 음은 물질이며, 영은 육체인데 기와 영이 합하여야 우주의 이치를 움직일 수 있으니 만물은 기(氣)에서 발생한 강약의 작용에 의해서 왕, 쇠함이 형성된다. 그러므로 대기 속의 기(氣)이며, 또 정(精)이다. 오행은 물질과 같은 유형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형인 것으로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의 물상으로 비유해서 논하는 것이다. 나무나 불, 흙, 쇠, 물 등의 물질로 오행의 기를 감각이나 느낌으로 표현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나 유형적 예를 적용하는 것이다.
상생의 원리와 변칙
상생은 서로 도와준다는 의미이다. 생을 해주는 글자는 자기의 힘이 빠지는 것이다. 생을 당하는 오행은 힘을 얻는 것이다. 생을 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나, 생을 받는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목생화에 화의 기운이 너무 왕, 하면 생을 받는다 해도, 좋을 것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 생을 받아도 좋지 못한 경우도 있다. 상생이란 사주에서 서로의 기운 즉, 오행이 서로 돕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상생은 서로 베풀려는 친화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물이 넘치면 밖으로 흘러 주변을 휩쓸어버릴 수도 있고 배부른데 더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상생의 반대 현상도 나타나게 된다. 하나의 오행이 다른 오행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즉, 에너지인 것이다. 에너지 이동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고, 익숙하고, 맹목적인 활동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목생화는 나무는 자신을 태워 불을 살린다. 봄이 여름이 되고, 도전하는 것이 열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화생토는 불이 다 타면 재가 흙으로 돌아가고 여름에서 간절기가 된다. 토생금은 흙 속에 바위와 금속이 생산되고 간절기가 가을이 되며 안정을 바탕으로 고유한 힘을 얻는다. 금생수는 바위에서 물이 나오고 가을이 겨울이 되며, 고유한 힘이 여유와 휴식을 준다. 수생목은 물은 나무에게 수분을 주어 자라게 하며, 겨울에서 봄이 된다. 오행의 상생은 좋고 상극은 나쁘다고 하는 생각을 일반인이 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부모나 선생이 되기 십상이다. 전진하는 것이 상생의 덕목이라면 적절하도록 멈추는 것은 상극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 삶에 상생과 상극이 적절히 필요하다.
상극의 원리와 변칙
상극은 상생과 반대로 서로 침범하고 위반, 투쟁하며 분해해서 생사를 결단하려는 성격이 있다. 그러나 나무에는 못을 쳐서 박고 삐거덕거리는 의자의 틈새는 억지로 끼워 맞춰야 튼튼한 법으로 생과 극의 결론은 단편적으로 말하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상극은 서로 억압하고 간섭하며 못살게 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스리다, 관리하다, 극복하다, 제거하다, 취한다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무가 흙에 뿌리를 내려야 살 수 있지만 흙의 입장에서는 그리 좋을 수만은 없다. 흙의 응집성에 중대한 손상이 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쪽을 나무의 입장과 반대로 극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힘이 설기 되는 흙의 관계를 극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상극은 양쪽 모두 설기가 있기 마련이라 따라서 극을 한다는 것이 반드시 힘의 우위를 말하는 뜻은 아니며 확실한 것은 극을 당하고 받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극을 감내할 만큼 힘이 있는가에 따라 극의 결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론은 극은 득이 되기도 하고 실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오행의 극의 관계도 생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순환되는 힘이며, 생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니지만 내면에서 작용하는 순화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고 약자는 강에 굴복하고 순종하듯이 거기엔 상생 같은 모자의 애정이나 협동이나 자유와 평화가 없다. 오직 힘에 의한 대결과 침투와 침략에 의한 강제와 지배하는 이치를 상극이라 한다. 기본적으로 사주 원국에 생하는 관계가 많다면 서로 돕는 경우가 많아지기에 도움이 되고, 극하는 관계가 많으면 서로 이기려고 경쟁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고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삶이 된다.